학교폭력 논쟁 일침 연예인의 ‘학폭미투: 연예인의 과거’

 걸그룹 시스터 출신 효린과 밴드 잔나비 소속 유영현의 과거 행보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다. 이들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학창시절 폭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들에게서 학창시절 상습 폭력에 시달렸다는 폭로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가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폭력 논란은 다른 연예인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대중은 퇴출과 처벌을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분위기다.

나도 그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관련 기사의 댓글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권선징악이라는 작은 정의의 실현을 이룬 것 같기도 했다. 혹시 학창시절 내내 이런저런 이유로 폭력과 굴욕을 견뎌내던 누군가의 얼굴과 이름을 떠올리며 대리만족을 느꼈던 건 아닐까 싶다. 이건 꼭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거야. 학교폭력이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는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다 한 번쯤 겪어본 아픔인 만큼 공인의 철면피한 행동에 모두가 본능적으로 분노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연예인들의 과거 학교폭력 논란이 이슈화되는 것을 단순히 시선으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공인을 대상으로 한 학폭미투는 곧 마녀사냥으로 변질돼 진실과 관계없이 피해를 보는 유명인사를 많이 배출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누군가는 이를 진실을 위한 투쟁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적으로 악용해 타당한 근거 없이 피해를 주장하는 것이며, 이의 진실과 관계없이 어느 한쪽 주장만을 신뢰하는 네티즌의 경우 의혹의 대상을 가차없이 끌어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진실보도는 무시한 채 대중의 이목을 끄는 편향된 기사에만 관심을 쏟는 국내 언론의 생리상 해당 연예인을 미끼로 수많은 기사를 양산해 그를 갈라놓을 것이다. 억울하게도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진 한 공인이 훗날 결백을 증명했다. 그런들 그때는 이미 한물간 시비의 표적이 돼 버렸으니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결국 권선징악이란 이름 아래 무고한 자를 21세기식 단두대에 올려놓은 채 이성이 아닌 감정에 취해 불필요한 목숨만 앗아가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과거 연예인과 공인의 학교폭력 논란이 문제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학교폭력의 모호한 기준: 10여 년 전 학생들이 이해했던 폭력의 개념은 오늘날 폭력의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다.1

오늘날 20대 중반 이상이면 공감하겠지만 적어도 10년 전 우리가 중고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선생님들의 일상적 체벌, 이유 없는 체벌, 상식 밖의 체벌이 너무나 많았고 이에 모두가 무감각하던 시기였다. 대부분의 교사는 하루도 채찍을 아끼는 날이 없었고, 일부의 경우 자신만의 스윙 방법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마치 자신의 청룡 언월도 방천화극처럼 다양한 나무 재질로 만든 매를 들고 교실에 입장했는데 그중 눈에 띄는 일부는 학교가 아니라 고양 꽃박람회에 적합한 듯했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떤 선생님의 손이 차갑고 누가 힘든지에 대한 정보가 개학 첫날부터 나돌았으며 해당 과목 시간에는 최대한 튀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엎드려라는 체벌은 애교 수준이었고 등교 때 두발이 규정된 상고대보다 1cm 길다는 이유로 머리를 가위로 그 자리에서 잘리는 일까지 다반사여서 10년 혹은 그 이전의 사회적 온도는 어땠을지 오늘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무릎 꿇고 손을 든다는 당시의 가장 약했던 체벌을 지금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만큼 비인륜적이고 심각한 가학적인 행위이며 수업시간에 말을 듣지 않은 학생을 매도한 선생님들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범죄자로 평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당시는 누구도 신체의 자유나 존엄한 인간으로 태어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분위기였고, 도덕에서 평등이나 자유의 가치보다 권위와 질서에 대한 존경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한 때였던 만큼 오늘날 강화된 개인적 자유의 시각이 아니라 집단적 질서의 관점으로 돌아가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채점된 시험에서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쓴 학생들의 시험지를 꼭 다시 가져와 틀렸다고 또 채점하는 것은 비록 후대의 관점에서는 옳다고 보일지 모르지만 그 세대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정답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매우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필자는 중학생 이후, 해외에서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구미적인 생각이 진한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필자의 시각에서 본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폭력의 기준과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의 온도가 실제 필자가 느끼는 것만큼 섬세하지도 높지도 않은 오류를 글로 저지를 수도 있다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필자가 이해하는 오늘날 한국은 교실에서 체벌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 사이에서 서로의 것을 빼앗아 돌려주지 않는 행위는 커다란 폭력으로 간주되며 함부로 서로의 몸에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는 행위 또한 폭력으로 인지되는 사회입니다. 이 가정을 바탕으로 오늘과 이전의 컨텍스트를 비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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